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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43주년 기념미사 강론: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

관리자 | 2019-10-01 | 조회 1699


 

유경촌 주교님 설립기념 미사 강론

2019년 9월 27일(금)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강론내용

 

 

+ 찬미예수님 오늘 바쁘신 중에도 각 시설에서 또 멀리 미사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설립43주년을 맞아서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불러주시어 가난한 이들을 돕도록 이끌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려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늘 헌신적으로 일해주시는 법인과 산하시설의 모든 직원들과 후원자와 봉사자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오늘 미사 중에 표창을 받으시는 장기근속 직원, 후원자, 자원봉사자, 우수본당 관계자분들에게도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또 이 미사는 지난 번 교구 인사발령으로 추기경님으로부터 제11대 회장에 임명되신 김성훈 신부님의 취임 미사이기도 합니다. 김 신부님께서 사회복지회를 이끄시는데 필요한 은총을 내려주시도록 이 미사 중에 함께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침 오늘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던, 가난한 이들의 주보성인인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입니다. 가톨릭, 카리타스인에게도 뜻 깊은 성인입니다. 1581년 남프랑스에서 태어난 성 빈첸시오 성인은 젊은 사제로서 파리로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길에 즐비한 많은 가난한 사람들, 또 그들의 고통을 보았습니다. 병에 걸려서 고통 받는 사람들, 노숙자들, 또 고아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빈첸시오는 어떻게든 그들을 도우려고 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이나 도와주려고만 생각했었으나 결국 더 많은 이들까지 돕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빈첸시오 성인은 그들의 곤경과 비참함을 통해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원래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기에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보려고 사제가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사제가 되어서는 오히려 자신이 그런 비참한 환경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죠. 빈첸시오는 하느님의 뜻으로 그에게 드러나는 바를 행 했었습니다 . 그의 삶은 그렇게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비지땀을 흘리면서 우리 손으로 하느님을 사랑합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구가 됩시다.’ 라는 빈첸시오 성인의 말씀을 오늘 우리 가슴 속에도 깊이 새겨 넣도록 합시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 말씀도 한번 주목해 보기로 합시다.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였습니다. 이 대답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베드로에게 그 답을 알려 주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라기보다 베드로가 그간 스스로가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했던 그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고백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물론 성령께서 베드로의 고백에 감화를 주셔서 도와주시기는 했겠지만 말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우선 베드로의 고백은 말로써 끝난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그의 삶으로 증명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믿기에 베드로는 목숨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죠. 베드로는 얼마 가지 않아서 자신의 고백과는 반대되는 고집을 부렸고 심지어 예수님을 배신하기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베드로의 배반이나 죄가 아니라 그의 이 고백이 결국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종적인 답변 순교로서 했던 최종적인 답변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 그럼으로 우리도 베드로처럼 인생에 부침이 생긴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대한 우리의 고백을 늘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도 물으실 것입니다. ‘너희에게 있어서 나는 누구냐.’ ‘나는 너에게 너의 삶에서 어떤 존재이냐’ 라고 말입니다. 비록 우리가 자신의 고백과는 상반된 행동으로 주님을 실망시켜드린다 하더라도 늘 다시 일어나서 고백합시다. 베드로 처럼요.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언제나 끊임없이 새로 응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또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모든 이들,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그런 사람들이 똑같이 예수님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지 않는가 합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누구입니까’ 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뭐라 대답할까요? 여러분이 같이 지내는 분들이, ‘나는 여러분에게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과연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이 나에게 누구입니까? 그들이 정말 그리스도이십니까? 그렇게 우리가 그들을 대하고 있습니까?’ 뭐 꼭 많은 사람들을 접하지 않는 분들, 예를 들어 행정 사무실에서 근무하시는 분들, 법인 사무실에 계신 분들은 딱히 많은 분들을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 다른 동료 복지 종사자들이 또 우리에게는 그들이 누구인가? 그 사무실에 계시는 직원들에게 다른 복지 종사자들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누구입니까? 오늘 미사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렇게 대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합시다. 셋째로 베드로의 고백이 우리 가톨릭사회복지활동 종사자의 고백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믿고 고백하기에 우리가 지금 이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천직이라는 표현이 좀 거슬리실까요? 시대에 뒤진 표현 같기는 합니다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자랑스러움 또 결연함이 담긴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내가 하는 이 일이 내 자신에게 보람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그런 일이 될 것입니다. 때때로 일이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거뜬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할 수 있을 때 이 일이 내 자신을 하느님께로 인도할 것이고, 나를 구원시켜주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내가 일을 통해서 일을 함으로써 성화되는 것이지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종사자 영성의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베드로의 고백이고 곧 우리의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십자가가, 그 십자가 죽음을 베드로에게 예고 했을 때 베드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이렇게 선을 그었습니다. 혹시 우리 자신도 그런 태도로 삶에 또 일에 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묻게 됩니다. 사회복지에 종사하고 어려운 이를 돕더라도 그냥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지요. 이것은 마치 예수님을 따르더라도 그냥 ‘딱 여기까지만 내가 따르겠다. 그 이상은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냥 내 방식, 내 스타일대로만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나의 고집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루카복음서는 이 대목에 연이은 23절에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덧붙였는데요 말하자면 자기가 스스로 설정한 그 한계를 넘어설 각오와 그에 따르는 고통을 감내해야, 즉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움직이고 사회복지도 자기 생각한 것만 하고 마는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사회복지 현장에서 예수님이 하느님의 그리스도시라고 그런 고백을 참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우리의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때로는 그냥 편한 길을 가라고 우리를 유혹하기도 합니다. 비난이나 모욕도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인데, 그런 불편이 싫어서 가톨릭사회복지활동도 여기까지만 하겠다고 선을 긋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됩니다. 정말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분이 원하시는 길을 가는 그런 가톨릭사회복지활동이 될 수 있도록 오늘 설립기념미사를 봉헌하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간청합시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분에 대한 우리의 고백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잘 짊어짐으로써 주님이 그리스도 구세주이심을 더 깊이 고백할 은총을 구합시다. 아멘